| 암살자들, ‘영화는 영화다’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
| 2026년 10월 06일(화) 1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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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다 보고 난 학자의 목소리에는 깊은 아쉬움과 함께 이해할 수 없다는 의문이 가득 차 있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뜨거운 논란의 크기에 비해, 영화가 담고 있는 실제 내용은 지극히 서사적인 예술 창작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특정 언론사, 즉 동아일보를 중심축으로 삼아 당시의 시대상과 언론의 흐름을 묘사하는 데 주력한 작품이었다. 영화의 어떤 장면이나 맥락에서도 정권이나 특정한 정치적 권력을 에둘러 비판하거나 암시하려는 의도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해하려면 끝이 없다. 더욱이 종합예술, 영화의 장르는 시각 도와 시각의 차이는 존재한다.
학자는 평소 텍스트와 시각 매체를 깊이 있게 연구해 온 이미지 문화 저술가이기도 하다. 객관적인 비평 프레임과 학술적인 시각으로 영화를 분석해 보아도, <암살자들>은 그저 하나의 완결된 대중영화이자 상상력이 개입된 예술적 결과물일 뿐이었다. 언론사라는 공간적·시대적 배경을 빌려 인간의 욕망과 시대의 비극을 조명했을 뿐, 특정 정치 세력을 겨냥한 이념적 메시지를 은밀하게 숨겨놓은 정치적 전단이 아니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이른바 ‘K-문화’라 불리는 독창적이고 뛰어난 문화적 역량으로 전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영화, 음악, 드라마 등 한국의 대중문화는 국경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 찬사를 받으며 새로운 문화적 이정표를 세워가는 중이다. 그러나 이처럼 빛나는 대중문화의 성취 뒤편에는, 안타깝게도 극단적인 이념적 갈등으로 왜곡된 한국 사회의 씁쓸한 현실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문화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작품 자체의 미학적·서사적 완성도나 인간에 관한 탐구로 향하지 못하고, 오직 ‘좌와 우’, ‘우리 편과 상대편’이라는 앙상한 이념의 잣대로 분열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창작자가 어떠한 의도로 작품을 만들었든 간에, 이를 소비하고 해석하는 집단이 정치적 셈법에 따라 멋대로 텍스트를 오해하고 각색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실과 허구의 결합을 순수하게 대중문화적 맥락으로 읽어내지 못하고, 매번 정권에 대한 찬반이나 진영 간의 싸움판으로 끌고 들어가는 왜곡된 문화 소비 방식이 지배하고 있다.
이미지 문화 학자가 느낀 허탈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문화적 자산과 창작의 자유는 사회를 풍요롭게 만드는 핵심 동력이다. 하지만 모든 창작물을 정치적 투쟁의 도구로 해석하려는 왜곡된 현실 속에서는 건강한 비평도, 예술적 확장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세계가 한국 문화의 감각과 깊이에 열광하고 있는 이 시점에, 정작 내부에서는 편협한 이념의 렌즈를 들이대며 창작물을 왜곡하고 사상 검증을 벌이는 왜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영화로 보아야 한다.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한 언론의 역사적 궤적을 다루든, 어두운 시대의 비극을 재구성하든, 그것이 스크린 위에 올려진 이상 먼저 평가받아야 할 것은 예술적 완성도와 대중과의 호흡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정치적 의도를 억지로 덧씌워 편을 가르고 갈등을 유발하는 태도는 한국 문화의 수준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행위에 불과하다.
학자의 관람과 허탈한 전화 한 통은,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심각하게 이념적 왜곡에 중독되어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하나의 신호다. 문화적 성숙이란 창작의 자유를 온전히 인정하고, 예술 작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이고 여유로운 시선을 회복하는 데서 시작된다. 세계의 찬사를 받는 K-문화의 위상에 걸맞게, 이제는 문화 예술을 정치의 하수인으로 끌어내리는 조잡한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세상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진다. 선하게 보는 것이 예술이다.
